악이란 무엇인가?
| Name : 윤태용   | View : 33 | Vote : 5 | Date : pm.10.30-02:14
악이란 무엇인가?
"악(惡)이란 무엇인가?", 언젠가 책에서 "회의 없는 신념이야말로 악이다."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런 고상한 표현의 적용을 받지 않는 ‘생활 속의 악’들도 많습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백수로 지내다 보니(백수는 모든 면에서 ‘을의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일종의피해의식이 체질화 되는지 그런 '생활 속의 악'들에 대해서 무척 예민하게 됩니다. 제가 요즘 자주 겪는 악은 주로 ‘선의(善意)를 가장한 악행’들입니다. 겉으로는 친절을 베푸는 것 같이 하면서 속으로는 상대를 골탕 먹이거나 모욕을 주려고 하는 질 낮은 행동들을 종종 마주칩니다. 이전에는 그 반대의 경우가 자주 눈에 띄곤 했습니다. 모든 인생지사를 (큰물에서든 작은 물에서든) 선악의 문제로 환원시켜서 거국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활의 불편(주로 감정적 차원에서)을 초래할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요즘 겪는 ‘생활 악인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들의 독선이 유형무형으로 여러 가지 압박을 행사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인간적인 결함으로 생긴 불화를 '선과 악'의 대립으로 몰고 가 자신 편이 되어주기를 강요하기도 해서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청년기 시절에나 화두가 될 만한 물음이 요즈음 저의 주요 관심사입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악, 그러니까 절대악(絶對惡)은 이제 동화 『해리 포터』에나 나오는 것으로 치부됩니다. 어른들의 동화인 탐정영화나 무협(武俠)영화에서도 절대악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아마 그 공식적인 신호탄이 심리드릴러 『양들의 침묵』(1991)과 퓨전무협 『동방불패』(1992)였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들에서는 ‘힘센 악’은 있어도 ‘절대악’은 없습니다. 선과 악은 오직 상황논리에 복속될 뿐 절대적인(객관적인)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닙니다.  『양들의 침묵』과 『동방불패』는 섬세한 상황논리, 깊이 있는 인간이해를 바탕으로 "악이란 무엇인가?"를 재미있게 묻고 있습니다. 그런 '새로운 인간 이해에 대한 요구'가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일으켜 이 영화들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런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그 이후의 아류(심리활극, 무협극)들은 모두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선과 악의 절대적 대립을 그리는 영화들은 그 이후로 ‘장려한 낙일(落日)도 없이’ 쓸쓸히 그 막을 내렸습니다. 참고로 이쪽 영화들은 그 이후로 ‘선악개념 없는 드라마’에서 출구를 찾습니다. 희생양을 강요받는 주인공의, '출구 없는 막다른 길에서의 투쟁'이 주 스토리가 됩니다. 내용은 뻔하지만 액션 쪽에서 볼거리가 많은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합니다. 『미션임파스블』 시리즈나 『제이슨 본』 시리즈 등 화려한 액션, 통쾌한 복수를 강조하는 영화들이 인기를 끌게 됩니다.
말씀이 나왔으니까 잠깐 『양들의 침묵』과 『동방불패』에 대해서 몇 마디 보태겠습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이 보여주는, 선과 악의 경계 해체를 바탕으로 하는 드릴러적 서사 구조는 원작 소설을 능가하는 영화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닥터 렉터는 절대악에 가까운 존재이지만 주인공 크라리스 스탈링에게는 선하고 전능한 부상(父像)이 투사되어 ‘내면의 연인’으로 각인됩니다. 동방불패(임청하)가 영호충(이연걸)에게 보여주는 전능한 모상(母像)으로서의 연인상에 대비되는 대목이지요. 그러니까 이 두 영화는 역할만 도치된 쌍둥이 영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서로 주인공들의 성적(性的) 위상만 도치되어 있지 하는 역할은 똑같습니다. 이 두 영화의 재미는 악(惡)의 캐릭터가 지니는 ‘예측할 수 없는 오묘함’에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플롯이 성격에 흡수되면서 관객의 기대를 수시로 배반하는 이야기의 반전이 서사의 핵을 이룹니다. 몰입 효과와 소격 효과가 빈번히 교체되는 상황에 관객은 당황하기도 하지만, 곧 그것이 새로운 서사 전략임을 알고 이내 극적 전개에 몰입됩니다. 어차피 반전은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낯익은 얼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구성은 이미 결말이 예정되어 있는 ‘보나마나한 정보의 지연 전략’에 충실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욕망의 방정식 안에서 일정한 조건과 공식을 통해 그때그때 해석될 수 있는 것일 뿐, 타고나면서 선(善)인 것도 없고 마르고 닳도록 악(惡)인 것도 없습니다.
"악(惡)이란 무엇인가?" 그 물음을 대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사실, 악(惡)은 원래부터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어서 그렇게 '나쁜 이름'을 붙인 것뿐이지요. 그것은 태초부터(신화시대부터) 모든 이야기 속에서 '인간과 함께 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것 없이는 인간(인간의 이야기)도 없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악은 시대별로, 개인별로, 중히 여기는 ‘태도나 형식’의 반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악과 관련해서 가장 좋지 않은 태도는 소위 ‘엄이도종(掩耳盜鐘)’의 경우입니다. 자기 귀만 막으면 악과 대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시기심, 질투심, 지배욕, 독점욕, 떼거리 문화, 후안무치, 그 모든 것은 그 다음 순위입니다. 지지자와 추종자를 이끌고 자신의 행위를 필요악(必要惡)으로 치부하는 것은 그 다음이고요. ‘악성(惡性)에는 내용이 없다’라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모럴도 악이긴 마찬가지이겠습니다.
글 #양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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